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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히딩크가 직접 밝힌 2002년 '희동구 신드롬'의 진짜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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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를 이끈 주역, 거스 히딩크 감독이

최근 영국 축구 전문 매체 '포포투(FourFourTwo)'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전무후무한 '히딩크 신드롬'에 대한 유쾌하고도 가슴 따뜻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습니다.


부임 초기에는 잦은 패배와 '오대영'이라는 오명 속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였지만,

강력한 체력 훈련과 전지훈련을 고집하며 대한민국 축구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결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 최강국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우리 국민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적을 선물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휘봉을 내려놓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히딩크 감독과 한국의 뜨거운 우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국 팬들이 보내준 과분한 사랑에 대해

"가끔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모습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며 겸손하게 운을 뗐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은 그를 '보스 중의 보스'라 불렀고, 경기장 곳곳에는

"희동구(한국식 애칭)를 대통령으로!"라는 유쾌한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귀화했다면 훌륭한 대선 후보가 되었을 것이라는 농담이 정설처럼 돌던 시절이었습니다.


월드컵 직후 쏟아진 파격적인 혜택에 대한 비화도 공개했습니다.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위촉된 것은 물론, 정말 온갖 제안을 받았습니다.

거절하는 것이 무례해 보일까 걱정됐지만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는 없었죠.

한 번은 제주도에 있는 별장을 제안받기도 했는데, 제가 유럽으로 돌아간 뒤에

주말을 보내러 제주도까지 날아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히딩크 열풍은 한국 땅을 넘어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의 조용한 시골 마을 '파르세펠트(Varsseveld)'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2002년 이후 그의 고향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뜻밖의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히딩크 감독의 친형과 관련된 아주 유쾌한 에피소드가 숨어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제 큰형이 아주 상술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형은 '히딩크가 밟았던 흙'을 작은 병에 담아 기념품으로 팔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이게 실제로 한국 관광객들에게 꽤나 잘 팔렸습니다.

5형제 틈에서 자란 제 가족들은 언제나 제 모든 도전과 모험을 가장 가까이서 흥미롭게 지켜봐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한국을 방문하며,

방문할 때마다 늘 처음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는 한국 팬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한국을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파트너와 함께 '거스 히딩크 재단'을 설립해

한국의 시각장애 아동들을 위한 특수 축구장(시각장애인 전용 풋살장)을 건립하는 등 꾸준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소리가 나는 특수 공과 패드가 덧대어진 벽으로 구성된 이 경기장에 대해 히딩크 감독은

"나도 안대를 쓰고 직접 뛰어봤는데 정말 한 걸음도 움직이기 힘들더라"며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히딩크 감독과 대한민국의 특별한 인연.

2002년의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하는 축구팬들에게 그의 따뜻한 근황은 여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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